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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어답터로서의 첫걸음, Sony CLIE PEG-NR70v의 추억. 나를 표현하는 수식어. ‘제닉스’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6년전 까지만 해도 ‘프로그래머’ 였다. 6~7살 때부터 컴퓨터를 시작하고 스무살이 넘도록 오직 컴퓨터와 프로그래밍만 알았기 때문에 다른 직업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내게 다른 미래가 있다고는 꿈꿔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2002년, 블로깅을 시작하고 모든 것이 변했다. 블로그를 통해 내 다양한 면을 봐준 많은 사람들이 내게서 프로그래머 이외의 가능성을 찾아 준 것이다. 마케팅과 관련해선 전공은 커녕 책도 한 권 읽어본 적이 없던 내가 마케팅을 하게 되고, 글 쓰는 일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밥벌이로 글을 쓰고 있으니, 사람의 미래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블로그가 좀 알려진 후로 언제부턴가 신문, 방송에 종종 얼굴을 보이게 되고 여러 매체에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그럴 때마다 내 앞에는 항상 ‘블로거’, ‘얼리어답터’ 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주제 역시 ‘얼리어답터로서의 추억’ 이랜다. 이 주제를 받고 과연 내가 언제부터 얼리어답터가 됐는지, 얼리어답터로서 어떤 추억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 해 보니, 그래. 바로 Sony의 CLIE PEG-NR-70v라는 PDA. 그 제품이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전부터도 디지털 디바이스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많은 제품들이 내 손을 거쳐갔지만 처음 ‘리뷰’ 라는걸 작성한 제품이 바로 NR70v였다. 이 제품은 Palm 기반의 PDA인데 폴더 형식으로 되어 위 액정이 스위블 형태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지금이야 휴대폰에도 이런 방식이 많이 채택되고 있고 별 희한한 인터페이스가 다 나오지만 당시 폴더가 열려 위 쪽 액정이 휙- 돌아가는 모습은 ‘감동’ 이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이 제품을 갖기 위한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당연히 국내 출시가 되지 않았고, 일본에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해외 구매대행 서비스가 흔했던 시절도 아니었을 뿐 더러 도대체 이런 제품은 어디서 사다 달라고 해야 하는 건지 감 조차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구매대행 사이트를 겨우 찾았는데, 아이고. 가격이 어찌나 놀라운지. 단순 환율 계산으로 40만원 대 초반이면 구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던 제품의 가격이 구매대행 업자를 거치면 60만원대로 치솟는 것이었다. 뭐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제품에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주문 했다. 입금에서 제품 배송까지는 약 2주가 걸렸고, 이 업자는 등록된 업체도 아니었고 그냥 단순한 개인이었기 때문에 그 2주는 정말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사기를 당한 건 아닌가, 정상적인 제품이 오긴 오는 걸까. 2주만에 NR70v를 들고 택배아저씨가 사무실로 들어오실 땐 농담이 아니라 정말 택배아저씨의 뒤에서 후광이 비쳤다. 하지만, NR70v는 그렇게 쉽게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충전 후 전원을 켜도 화면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Palm OS를 처음 써보는 것이라 Palm OS기기의 화면이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또다시 시작한 검색과 질문. 그러다 깨달았다. 아하. 불량이구나. 다시 그 구매대행 업자 페이지에 가서 질문을 올리고 교환 요청을 했는데, 자신이 1주일 후에나 다시 일본에 갈 예정이며 이 제품을 그 자리에서 바로 교환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추가로 2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어쨌든 뭐 그렇게 어영부영 1개월이 또 흘렀고 처음 비용을 입금하고 2개월이 지나서야 실제 작동이 되는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 정도쯤 됐으면 그냥 환불 받고 포기할 만도 했는데. 도대체 그 제품의 무엇이 나를 그 정도로 미치게 만들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때의 느낌은 분명히 여자친구가 아무 소식 없이 한 1주일 전화를 안받을 때의 느낌? 딱 그 정도의 답답함과 딱 그만큼의 기다림 이었던 것 같다. 정말 힘들게 구입한 제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참 열심히 썼던 것 같다. 지금은 액정 보호필름이 참 싸고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지만, 그 때만 해도 소니 정품밖에 없었고 그 가격은 정말 비닐 한 장이라고 생각 하기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었기 때문에 (구매대행비 포함하면 약 4~6만원선?) 은행가서 통장 넣는 비닐 얻어다가 투명한 부분 액정 크기로 잘라 물 발라서 액정에 붙이고 뿌듯해 하기도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투른 실력으로 130만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올릴 곳도 없는 리뷰를 쓰기도 하고 말이다. 2002년, 4월. 얼리어답터로서 첫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던 제품인 Sony의 CLIE PEG-NR70v. 6년이 지난 지금 그 Sony에서 나에게 ‘얼리어답터로서의 추억’을 써달라고 하다니 참 재미있는 우연인 것 같다. 요즘은 수 많은 제품의 리뷰 의뢰를 받고 각종 신제품을 발표하는 간담회에 초대되지만 그 시절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을 접해본 지는 상당히 오래된 것 같다. 간담회는 점점 화려해지고, 마케팅 기법은 세련되어 지지만 제품 자체는 신선함이나 새로운 시도 없이 무난해 지고 있다고 할까? 진짜 고객을 두근거리게 하는 마케팅의 모든 해법은 제품 자체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다시 그런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이 있다면 얼마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단지 제품 하나일 뿐이지만 이렇게 한 사람의 직업과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음을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제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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